본문 바로가기

중국골프

[중국 인문학 골프기행 17화 ] 광저우 천 년의 무역항, 딤섬의 김 서린 광주(廣州)의 욕망과 미학

 

[중국 인문학 골프기행 제17화 ] 광저우 천 년의 무역항, 딤섬의 김 서린 광주(廣州)'의 미학" 

- 딤섬의 김 속에 피어난 욕망, 제국의 겨울을 녹이다 -


“북경의 바람이 황제의 위엄이라면, 광저우의 바람은 상인의 욕망이다.
그곳에는 식지 않는 딤섬의 온기와 2천 년을 이어온 무역항의 열기가, 골퍼의 야성을 기다리고 있다.”

 

■  프롤로그: 12월, 남으로 남으로!

한국의 골프장이 누렇게 빛을 잃고, 영하의 칼바람으로 페어웨이가 단단히 얼어 붙을 무렵이면 골퍼들의 마음속 나침반은 본능적으로 남쪽을 가리킨다. 인천공항에서 두꺼운 외투를 벗어두고  비행기로 3시간 반. 광저우 공항에 내리는 순간, 눅눅하면서도 따뜻한 아열대의 공기가 훅 끼쳐온다. 단순한 기온 차이가 아니라 계절을 거슬러 다시 봄으로 돌아왔다는 골퍼들만 아는 느낌이다.

 

광저우(廣州). 우리에게는 2010년 아시안게임을 치른 도시, 혹은 전 세계의 물건이 모이고 흩어지는 ‘세계의 공장’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2,200년 전부터 해상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었고, 청나라 시절 서양 상인들에게 유일하게 문을 열었던 현장이었다. 아편전쟁의 포연 속에서 제국의 자존심이 무너져 내린 비극의 땅이기도 하지만 손문(쑨원孫文)이 봉건 왕조를 무너뜨리고 혁명의 불씨를 지핀 근대 중국의 산실이기도 하다.

역동적인 역사만큼이나 광저우의 골프 역시 뜨겁다. 중국 대륙에서 골프 문화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화려하게 꽃핀 곳이 바로 광저우와 센젠 등 남부 지역이다. 상인 특유의 실용주의와 최고를 지향하는 욕망이 필드 위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주장(珠江) 위에 설치된 하이신(海心)대교. (사진/신화통신) [.

영하의 추위를 피해 날아온 이 거대한 상업 도시에서, 나는 붉은 대지의 야성과 묵향이 서린 호수, 그리고 혀끝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딤섬의 유혹을 만났다.


■  사자호(Lion Lake) CC: 붉은 화성(Mars) 위에서 야성을 외치다


광저우 시내를 벗어나 '청원'으로 향하는 길은 마치 시간을 건너는 여정 같다. 고층 빌딩 숲이 잦아들고 낯선 풍경이 차창을 채울 즈음, 거대한 사자상이 입구를 지키는 사자호(Lion Lake) C.C에 도착한다. 미국의 코스 설계 거장 릭 제이콥슨(Rick Jacobson)이 “중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코스”를 만들겠다며 작정하고 빚어낸 곳이다, 거대한 설치미술에 가깝다는 평을 듣는다.

클럽하우스를 나서 문 코스(Moon Course) 1번 홀 티박스에 섰을 때, 잠시 숨을 멈췄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익숙한 중국식 산수가 아니었다. 페어웨이 양옆으로 삐죽삐죽 솟아오른 붉은 암석과 거칠게 자라난 러프, 그 사이를 흐르는 붉은 흙의 결은 마치 지구가 아닌 화성 표면에 불시착한 듯한 착각이 들었다.

중국 남부 특유의 지형을 그대로 살린 이 붉은 코스는 골퍼들의 도전 본능을 자극한다. 페어웨이 자체는 넓은 편이지만, 붉은 바위들이 주는 시각적 압박감은 상당하다. 사자가 입을 벌린 듯한 벙커와 코스 곳곳에 도사린 워터 해저드는 골퍼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안전하게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고 지를 것인가.”

 

 

5번 홀, 강한 맞바람이 불어왔다. 드라이버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과거 거친 파도를 뚫고 아라비아로 향했던 광저우 상인들의 모험심을 생각했다. 이곳에서는 머뭇거리면 잡아먹힌다. 사자의 구역이니까. 청조 말기 임칙서가 호문 바다에서 아편함을 불태우며 서구 열강에 맞섰던, 그 결기 같은 것이 필요했다.

“피하지 않겠다.” 경쾌한 타구음과 함께 공이 붉은 암벽을 넘어 페어웨이 중앙에 안착했을 때 기쁨은 대단했다. 매너와 에티켓이라는 신사 속에 잠들어 있던 내 안의 ‘야수’가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호랑이 띠인 내가 사자를 보고 야성을 찾은걸가?  사자호CC에서 18홀은 점수를 관리하는 게임이라기 보다 생존을 위한 아름다운(?) 투쟁에 가까웠다.


■  조경(Zhaoqing) CC: 포청천의 벼루에 마음을 갈다


사자호가 불 같은 야성을 뿜어냈다면, 서쪽에 자리한 조경C.C는 물처럼 은은한 기운으로 격해진 마음을 차분히 식혀준다.

‘조경’이라는 지명은 송나라 휘종이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시작되는 곳”이라며 하사한 이름이다. 하지만 골퍼들에게 이곳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문방사우의 으뜸으로 꼽히는 벼루 산지이기 때문이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이곳 돌로 벼루를 만들어 먹을 갈고, 시를 썼다.

특히 우리에게  잘 알려진 ‘판관 포청천’이 이곳에서 지사로 근무했다. 그는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선물로 받은 벼루 하나조차 챙기지 않고 강물에 던져버렸다고 한다. 그만큼 청렴을 생명처럼 여겼다는 이야기다. 조경 C.C는 바로 그 고고한 선비의 정신을 닮아 있다.


게리 플레이어(Gary Player)가 설계한 이 코스는 험준한 산악형이 아니다.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흐르는 호수, 병풍처럼 둘러싼 숲, 그리고 멀리 기암괴석의 산세가 어우러져 한 폭의 수묵화를 완성한다. 페어웨이는 벼루처럼 검고 윤기가 흐르며, 그린 주변의 벙커는 붓놀림처럼 자연스럽다.

이곳에서의 샷은 힘이 아니라 ‘결’로 풀어야 했다. 욕심을 부려 숲을 가로지르려 하면, 깊은 러프와 나무들이 어김없이 회초리를 든다.

“흐르는 물처럼, 붓이 종이 위를 지나가듯 쳐라.”

캐디의 조언이 마치 포청천의 호령처럼 들렸다. 조경 C.C에서의 라운드는 스윙의 군더더기를 덜어내는 과정이었다. 욕심이라는 먹물을 벼루에 갈아버리고, 텅 빈 마음으로 공을 쳐야 한다.

18번 홀을 마치고 뒤돌아본 코스는 잘 그린 난초 그림 한 점처럼 은은한 여운을 남겼다. 스코어카드의 숫자는 중요하지 않았다. 마음이 맑아졌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  ‘포이즌(Poison)’의 유혹: 치명적인 독배를 마시다


현지 골퍼들 사이에서 ‘포이즌(Poison)’이라 불리는 코스가 있다. 공식 명칭보다 이 별명이 더 유명한, 광저우 인근 홀리데이 아일랜드나 난사 지역의 난코스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름부터 섬뜩하다. 독(毒)이라니. 하지만 골프채를 잡아본 사람이라면 안다. 골프 자체가 이미 치명적인 중독이라는 사실을.



이 코스는 아름답지만 가시 돋친 장미 같다. 설계자는 골퍼의 심리를 훤히 꿰뚫고 있는, 어딘가 악마적인 천재임이 분명하다. 티박스에 서는 순간 시야는 좁아지고, 곳곳의 워터 해저드는 “들어올 테면 들어와 보라”고 유혹하는 듯하다.

이곳은 광저우 상인들의 철저한 계산과 승부사 기질을 시험하는 무대다. 단순히 멀리 보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자신의 비거리를 정확히 알고, 끊어갈 곳과 도전할 곳을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위험을 감수해 성공했을 때의 보상은 마약처럼 달콤하지만, 실패의 대가는 가차 없다. 


파 5홀에서 투온을 노리다 공을 해저드에 빠뜨렸을 때, 나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내가 이 독에 중독됐구나.”

어려운 코스일수록 정복 욕망은 더 커진다. 스코어는 망가졌지만, 그 고통마저 쾌감으로 느껴지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골프라는 거대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다. 이 ‘독’을 해독하는 유일한 방법은, 다시 티잉 그라운드에 서는 것뿐이다.


 

■  식재광주(食在廣州): 김 서린 딤섬, 인생을 찌다


“천하의 모든 맛은 광저우에 있다(食在廣州).”

이 말을 빼고 광저우 골프를 논하는 것은 앙꼬 없는 찐빵을 먹는 것과 같다. 라운드의 피로를 푸는 곳은 클럽하우스 사우나가 아니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식탁 위다.

오전 라운드를 마치고 찾은 현지 식당. 왁자지껄한 소음 속에서 얌차(飲茶)의 세계가 펼쳐진다. 종업원이 카트를 밀고 다가와 대나무 찜기 뚜껑을 여는 순간마다 하얀 김이 얼굴을 감싼다. 그때만큼은 타수도, OB도, 쓰리 퍼트의 악몽도 모두 김 속으로 사라진다.

투명한 전분 피 속에 분홍빛 새우살이 비치는 하가우, 돼지고기와 버섯을 다져 넣고 게알로 장식한 슈마이, 달콤한 차슈가 빵 속에서 터져 나오는 차슈바오. 식탁 위에 찜기가 하나둘 쌓여가는 모습은, 18홀 코스보다 더 다채롭고 화려하다.

 

광둥 사람들은 딤섬을 먹으며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차를 따르고, 찻잔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감사의 뜻을 전하고(이는 청나라 건륭제 시절의 일화에서 유래했다), 천천히 대화를 나누며 만두 하나를 음미한다. 그 순간 문득 깨닫게 된다.

“인생, 너무 급하게 굴지 마라. 뜨거운 만두를 급히 먹으면 입천장만 데일 뿐이다.”

골프도 다르지 않다. 급해지면 리듬이 무너지고 스윙이 꼬인다. 딤섬을 호호 불어가며 천천히 맛보듯, 샷과 샷 사이의 간격을 즐기고 동반자의 굿샷에 진심으로 박수치는 여유. 그것이 바로 미식의 도시 광저우가 내게 가르쳐준 진짜 풍류였다.




 

■   에필로그: 무역은 길을 잇고, 골프는 마음을 잇는다

광저우는 그 모든 영광과 상처를 품은 채 흐르는 주강 강물처럼, 이방인을 넉넉하게 받아들인다. 사자호의 붉은 바위 앞에서 잃어버린 야성을 되찾았고, 조경의 호수 앞에서는 정직과 원칙을 되새겼다. 난코스의 독배를 마시며 겸손을 배웠고, 따뜻한 딤섬 한 점에 위로를 받았다.

한국의 골프장이 동면에 들어간 사이, 광저우의 잔디는 여전히 푸르고 생명력이 넘친다. 나는 단순히 공을 치러 온 것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잊고 지냈던 뜨거운 욕망과 차분한 성찰을 동시에 만났다.

“무역은 길을 잇고, 골프는 마음을 잇는다.”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었던 이 도시에서, 당신의 골프 인생도 다시 한 번 새로운 전성기를 향해 티오프할 수 있기를. 클럽을 챙겨라.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이미 봄이 실려 있다.

 

 [프롤로그] 잔디는 원고지, 클럽은 펜이라 (전문보기)

단순히 공을 치고 먹고 마시는 놀이만 아닌, 역사와 신화, 예술과 낭만이 살아 숨 쉬는 중국 대륙의 보석 같은 필드로의 초대. 이 시리즈는 거친 사막에서 시작해 화려한 골프 제국으로 막을 내리는, 한 편의 대하드라마다.....


 PART 1. [자연과 신화] 신(神)이 빚은 정원, 치유를 만나다

"압도적인 대자연 앞에서 인간은 겸손해지고, 골프는 기도가 된다."

제1화. [백두산] 닫힌 문 너머, 자작나무 숲의 그리움 (전문보기)
지금은 갈 수 없어 더욱 사무치는 이름, 백두산. 하얀 자작나무 숲은 윤동주의 시처럼 꼿꼿하고 순결하다. 1,442개 계단을 올라 마주한 천지의 푸른 물결 앞에서 우리는 말을 잃었다. 골프라는 유희로 시작했지만, 그 끝은 민족의 핏줄을 확인하는 뜨거운 순례였다. 언젠가 다시 그 빗장이 열리는 날, 나는 가장 먼저 그 숲으로 달려갈 것이다.

제2화. [리장] 구름 위 3,100m, '잃어버린 지평선'을 찾아서 (전문보기)
만년설이 덮인 옥룡설산 아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 속 샹그릴라가 펼쳐진다. 숨은 가쁘지만 정신은 투명하다. 차마고도를 걸었던 마방들의 방울 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오고, 나시족의 신비로운 눈망울이 나를 반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티박스에서 날린 공은 중력을 거슬러 만년설 속으로 사라진다. 이곳은 인간의 땅이 아니라 신들이 잠시 빌려준 정원이다.

~~~~


  PART 3. [예술과 낭만] 시(詩)가 되고 노래가 되는 여행

제16화. [곤명] 골프에 '봄'이 왔다. 365일 꽃피는 도시 춘성(春城) (전문보기)
일 년 내내 꽃이 지지 않는 춘성(春城). 중국 No.1 춘성 골프장의 유리판 같은 그린 위에서 봄을 만끽한다. 인근 석림(Stone Forest)에는 사랑을 이루지 못해 돌이 된 아시마의 전설이 흐른다. 영원한 봄처럼, 우리의 골프 열정도 시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샷을 날린다.

제17화. [광저우] 천 년의 무역항, 딤섬의 김 서린 광주(廣州)'의 미학 (전문보기)
" 천하의 모든 맛은 광저우에 있다."  이른 아침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딤섬과 보이차를 즐기며 하루를 연다. 중국의 남쪽 대문이자 해상 실크로드의 시발점. 주강(珠江)의 물결을 따라 펼쳐진 페어웨이는 상인들의 실용주의 정신처럼 군더더기 없이 정교하다. 이곳은 또한 쑨원(孫文)과 황포군관학교의 혁명 정신이 살아 숨 쉬는 땅이다. 가장 세속적인 즐거움과 가장 뜨거운 역사가 공존하는 곳, 광저우에서 우리는 삶을 긍정하는 에너지를 가득 채운다.

제18화. [하이난 싼야] 소동파가 사랑한 세상의 끝, 천애해각에서 해방되다 (전문보기)
세상의 끝(天涯海角)이라 불리던 험난한 유배지. 하지만 소동파는 그곳에서 '마음이 편안하면 타향도 고향'이라며 낙천을 노래했다. 신주 페닌슐라의 거친 파도와 블루베이의 예술적인 벙커를 넘나들며, 우리는 겨울 없는 남국의 햇살 속에서 소동파가 깨달았던 진정한 마음의 해방과 치유를 얻는다.

제19화. [타이페이] 자금성의 보물과 덩리쥔의 노래 (전문보기)
바다 건너 보물섬 타이페이. 자금성의 진짜 보물은 이곳 고궁박물관에 있다. 바람의 코스 양승 C.C.에서 자연과 싸우고, 밤에는 지우펀의 홍등 아래서 덩리쥔의 <첨밀밀>을 듣는다. 작지만 꽉 찬 행복, 소확행이 있는 섬. 딤섬 하나에 담긴 장인의 정성처럼, 섬세하고 따뜻한 골프 여행이다.


목차보기

 

중국 인문학 골프기행 목차 & 미리보기

중국 인문학 골프기행 목차 & 미리보기 - 중국 대륙 20개의 낭만적인 필드를 열며 ■ [프롤로그] 잔디는 원고지, 클럽은 펜이라 (전문보기)단순히 공을 치고 먹고 마시는 놀이만 아닌, 역사와 신화

golftour.tistory.com

 

 

 

 

사업자 정보 표시
더존투어(주) | 최은정 |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동 797-2번지 뉴코아백화점 9층 | 사업자 등록번호 : 128-86-16196 | TEL : 02-1600-6578 | Mail : bettertour@naver.com | 통신판매신고번호 : 경기 제5348호 | 사이버몰의 이용약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