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문학 골프기행 1화] 닫힌 문 너머, 여전히 하얗게 빛나는 그 숲을 그리며 - 백두산 완다 리조트 회상기(回想記)
- 가고 싶어도 지금은 갈 수 없는 곳. 그래서 더욱 사무치게 그리운 이름, 백두산(白頭山).완다 골프장
여행을 업(業)으로 삼은 지 15년. 수많은 국경을 넘었고, 수천 개의 깃대를 향해 샷을 날렸다. 그중에는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코스도 있었고 전율이 일만큼 난이도가 높은 코스도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당신의 골프 인생에서 가장 '가슴 저릿했던' 곳이 어디인가?"라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대답할 것이다.
바로 백두산이라고.지금은 갈 수 없는 백두산 완다 골프 리조트 였다고.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조금 특별하다. 당장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백두산 완다 골프장(화이트버치 & 송곡 CC)은 시진핑 주석의 생태 문명 건설 지시로 인해 무기한 휴장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자연을 본래의 모습으로 돌려 놓으려는 중국 정부의 정책으로 그곳은 이제 '금지된 정원'이 되었다. 골퍼로서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갈 수 없게 되니 기억은 더욱 선명해지고 그곳의 가치는 더 명확해진다.

굳게 닫힌 빗장 너머 여전히 하얗게 빛나고 있을 자작나무 숲과 몇 해전 그 여름날의 서늘했던 공기를 활자로 다시 불러내려 한다. 그 숲에서 느꼈던 자작나무의 순백색 떨림과, 백두산 천지(天池)를 마주했을 때의 벅찬 감동이 가슴 속에 너무나 선명하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골프장 리뷰가 아니라 내 생애 가장 뜨거웠던 여름날의 기억 보고서이자, 함께 했던 한 친구에 대한 고마움이자 언젠가 다시 열릴 그 문을 기다리는 '간절한 기도문'이다.
여행이란 떠나는 순간뿐만 아니라 다녀온 후의 추억을 곱씹는 과정까지 포함한다고 믿는다. 언젠가 다시 그 빗장이 열릴 날을 기다리며, 내 기억 속에 박제되다 시피 강한 기억으로 남은 < 가장 아름다웠던 여름날의 라운드>를 함께 나누고 싶다. 골프장 안내를 위한 글이 아닌 공감과 여운을 위한 글로 읽어 주시길 부탁드린다"

금지된 정원, 그래서 더 애틋한 곳
백두산의 서쪽으로 향했다. 연길 공항에서 버스로 네 시간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먼 길. 하지만 차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옥수수밭과 만주 벌판을 보며 지루함보다는 묘한 설렘을 느꼈다.
이 땅이 어디인가. 고구려의 기상이 서려 있고, 독립투사들이 말을 달리던 광야다. 점점 고도가 높아질수록 공기의 밀도가 달라짐을 느꼈다. 해발 800m. 인간의 생체 리듬이 가장 활성화된다는 고원에 '완다 리조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알프스의 어느 마을을 통째로 옮겨 놓은 듯한 유럽풍의 건물들. 하지만 그 이국적인 풍경을 압도하는 것은 배경으로 서 있는 거대한 원시림이었다. 초여름이었지만 차 문을 열자 에어컨 바람보다 더 차갑고 청량한 천연의 냉기가 온몸을 감쌌다. 섭씨 20도의 천국. 이곳에서의 골프는 '피서'가 아니라 '치유'임을 직감하며 짐을 풀었다.


기억 속의 풍경: 자작나무가 춤추던 그 페어웨이
눈을 감으면 지금도 선하다. 잭 니클라우스가 설계 했던 '백화(White Birch) 코스'의 풍경이 눈에 밟힌다. 1번홀 티박스에 서면 눈 덮힌 백두산 정상이 보였던 그 감동을 잊을 수 없다.



하얀 껍질, 시인(詩人)의 종이
코스 양옆으로 빽빽하게 들어선 자작나무 군락. 그 하얀 껍질들은 마치 수천 장의 종이가 펄럭이는 것 같았다.
그 숲 사이로 드라이버 샷을 날릴 때의 기분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공 맞는 소리가 숲의 정적을 깨우면 하얀 나무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듯 잎을 흔들었고 나뭇가지 사이에 숨었던 새들이 날아올랐다.

경쟁을 위한 샷이 아니라, 자연과 교감하는 '대화'였다. 타수를 잃어도 좋으니 저 숲속을 조금 더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곳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 윤동주 <서시>
일제 강점기, 그 혹독한 겨울 속에서도 자신의 양심을 하얗게 지키려 했던 시인의 마음이 저 꼿꼿한 자작나무를 닮지 않았던가. 샷을 준비하며 심호흡을 했다. 폐부 깊숙이 들어오는 피톤치드 향이 머릿속의 잡념을 씻어냈다.
백두산골프 백화코스 1번홀
https://youtu.be/xYfIFYozcsU?si=IMdFfq5SDV6nrRbG
송곡(Pine Valley) : 야생의 숲, 호랑이의 등을 넘다
백화 코스가 여성적이고 서정적이라면, 송곡 코스는 남성적이고 거칠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전나무와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이곳은 인간의 손길을 거부하는 야생 그 자체였다.

페어웨이는 좁고 굴곡졌다. 마치 백두산 호랑이의 등을 타고 넘는 듯한 긴장감이 매 홀마다 이어졌다. 러프는 질겼고 벙커는 깊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이 불쾌하지 않았다. 인공적으로 난이도를 조절한 것이 아니라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숲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길만 내어준 겸손한 설계였기 때문이다.



인공적인 조경이 아닌 태고의 숲을 잠시 빌려 쓰는 듯한 겸허함. 그곳에서 우리는 골퍼가 아니라 숲을 탐험하는 개척자가 된 기분이었다. 지금은 사람의 발길이 끊겨 아마도 숲은 더 울창해지고 야생 동물들의 낙원이 되어 있겠지.
[백두산골프] 장백산골프장-송곡동코스 4번홀
https://youtu.be/AsR4FNIHE5U?si=QfbpGMjTzosjxqZD
영혼의 순례: 백두산 천지에 오르던 날
백두산 골프 여행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라운드가 끝난 다음 날 찾아왔다. 클럽 대신 등산화 끈을 조여 매고 서파 산문으로 향했다. 셔틀버스를 타고 수목 한계선을 넘어 고산 초원지대에 내렸을 때 눈앞에는 가파른 나무 계단이 하늘로 이어져 있었다.
1,442개의 계단 끝에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며 서파 코스의 1,442개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마주한 천지 (天池) . 비록 아직 얼음이 녹지 않아 천지의 푸른 물을 보지는 못했지만 천지를 마주한 우리나라 여행객들의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누군가는 눈물을 훔치기는 듯도 했다.



우리는 중국 땅을 밟고 남의 나라 티켓을 끊어 이곳에 올 수밖에 없었다는 분단의 현실에 가슴 아파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웅장한 영산을 마주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어제 골프장에서 느꼈던 즐거움이 '유희'였다면, 천지 앞에서 느낀 감정은 '전율'이자 '정화'였다.


미식의 추억: 숲을 통째로 삼키다
라운드 후 맛보았던 음식들의 향기도 잊을 수 없다.
운동과 등반 후의 허기는 백두산의 진미들로 달랬다. 완다 타운의 식당에서 맛보았던 자연산 송이버섯의 향은 지금도 코끝을 맴돈다. 흙냄새와 소나무 향이 뒤섞인 그 진한 풍미는 백두산의 정기를 씹어 삼키는 듯했다.
자연산 송이버섯의 진한 향과 연변 조선족 아주머니가 구워주는 양꼬치의 고소함, 쯔란 향 가득한 양고기에 시원한 '빙천맥주' 한 잔을 들이켜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빙천 맥주는 백두산 광천수로 만든다 했다. 물맛이 좋으니 술맛이 달 수밖에.



그것은 한끼식사가 아니라 백두산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의식이었다. 지금은 사진으로만 남아있는 그 한 상 차림이 오늘따라 유난히 그립다.



저녁이면 리조트 광장에서 열리는 작은 음악회, 밤하늘에 쏟아지던 은하수,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나누던 두런두런한 이야기들. 그곳의 밤은 도시보다 더디게 흘렀고 그 느림의 미학 속에서 진정한 휴식을 맛보았다.
나가며... 다시 열릴 그 문을 기다리며
몇 해 전 그 여름의 기억을 끝으로 백두산 완다 골프장은 긴 겨울잠에 들어갔다. 시진핑 주석의 생태 보존 정책은 자연에게는 축복일지 모르나 그 숲을 사랑했던 골퍼들에게는 긴 기다림의 형벌과도 같다.
들리는 소식으로는 페어웨이의 잔디가 걷히고 그 자리에 다시 나무가 심어지고 있다고 한다. 골퍼로서는 아쉽기 그지없는 일이다. 잭 니클라우스가 설계한 그 명품 코스를 다시 밟을 수 없다는 상실감은 크다.

하지만 믿고 싶다.
이 폐쇄가 영원한 이별은 아닐 것이라고. 언젠가 자연이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인간과 자연이 더 지혜롭게 공존할 방법이 찾아진다면 그 빗장은 다시 열릴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 숲은 이전보다 더 울창하고 신비로운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줄 것이다.
지금은 갈 수 없어 예전의 사진만 뒤적이지만 내 마음속에서 백두산 완다 백화코스의 1번 홀은 여전히 '플레이 중'이다. 하얀 자작나무 숲 사이로 경쾌한 타구음이 울려 퍼지고, 1,442개 계단 끝에서 벅찬 감동을 느낀 그 여름날.
오늘 이 글은 살아있는(?) 골프장이 아닌 쉬고 있는 코스를 돌아본 회상기이다.
골프가 단순히 공을 치는 행위가 아니라 시(詩)를 만나고, 역사를 만나고, 그리움을 만나는 인문학적 여정임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고백이다. 지금 당장은 갈 수 없지만 백두산이 우리에게 주었던 그 웅장한 감동과 호연지기 만큼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이기도 하다.

언젠가 다시 백두산 골프장이 열리는 그날, 가장 먼저 여러분께 소식을 전하겠다. 그때 우리 함께 그 하얀 자작나무 숲으로 다시 떠나 보시길 바란다.
그리움을 담아...
더존투어(주) 대표 <여행하는 골퍼> 드림
[에디터 노트]
본 포스팅에 소개된 백두산 완다 리조트 내 골프장은 현재 현지 사정으로 운영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백두산 천지 관광(북파/서파)은 가능하지만, 골프 라운드는 아쉽게도 불가능함을 알려드립니다. 이 글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된 글임을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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