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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골프/혼슈-동북부

[시즈쿠이시골프] 골프여행 후기 2부- 은하철도 999호를 타다

[시즈쿠이시골프] 골프여행 후기 2부 - 은하철도 999호를 타다

 


시즈쿠이시에서 은하수로 향하는 열차를 타다 


낮 동안 시즈쿠이시 골프장 36홀 라운드를 마친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밤이 찾아왔다. 따스한 온천에 몸을 풀고, 이와테현 초원이 가꾼 미식으로 저녁식사를 마쳤다. 시원한 생맥주와 사케 한잔을 곁들인 저녁 식사는 우주유영을 위한 준비였다.

 
고원지대 6월의 밤기온은 서늘하다 못해 한기를 느끼게 했다.  따뜻한 옷차림으로 프린스호텔이 자랑하는 '시즈쿠이시 은하 로프웨이' (  Shizukuishi Galaxy Ropeway) 승강장으로 향했다.

 
'시즈쿠이시의 밤하늘과 별똥별에 소원을' 이라는 문구가 마음을 설레게 했다. 이 특별한 야간 운행은 낮에는 골프장과 리조트였던 이곳을 밤마다 우주로 향하는 정거장으로 탈바꿈시키고 있었다.


고도 730m의 산 정상을 향해 움직이는 케이블카에 올랐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소리 없이 미끄러져 올라가는 로프웨이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린시절 즐겨 봤던 만화영화 속에서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향해 힘차게 날아오르던 바로 <은하철도 999호>의 현실판 같았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흑백 TV 앞에서 들었던 그 익숙한 멜로디가 거짓말처럼 귓가를 스치는 듯 했다.
( ※ 이곳이 실제 이 만화영화와 원작 소설 - 미야자와 겐지 "은하철도의 밤"이 탄생한 무대였다는 사실.  예습(?) 을 해 미리 좀 알고 온 덕분에 감흥은 더 깊었다.)  


로프웨이가 고도를 높일 때마다 발밑의 리조트 불빛은 아득해졌고, 창밖으로 하나둘 별들이 켜지기 시작했다. 정상 전망대에 발을 내딛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숨이 멎을 듯 했다.  사방을 둘러싼 깊은 고요와 도심의 불빛이 완벽히 차단된 암흑이 가슴을 서늘하게 적신다. 하늘 전체를 가득 채운 은하수. 쏟아질 듯 촘촘한 별무리들이 거대한 띠를 이루며 흐르고 있었다. 손을 뻗으면 별이 만져질 것 같은 거리감까지.
밤하늘을 전문적으로 해설해 주는 안내인들이 초록색 레이저 포인터 밤하늘을 가를 때마다, 밤하늘은 거대한 우주 극장으로 변하는 듯 했다. 일본어 설명만 있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황홀한 우주쇼는 눈으로만 봐도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미야자와 겐지의 우주와 평상 위의 여름밤 향수


이런 압도적인 은하수를 품은 땅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을까?  이곳 이와테현 시지쿠이시는 소설 <은하철도의 밤>을 쓴 일본의 국민 작가 미야자와 겐지 (宮沢賢治, 1896~1933)의 고향이다. 백 년 전 바로 이 땅에서, 이와테산의 거대한 실루엣과 초원 위로 흐르는 은하수를 바라보며 우주로 달리는 기차의 환상을 키워냈다. 그리고 그 문학적 상상력은 훗날 마쓰모토 레이지에게 이어져 <은하철도 999>라는 불후의 명작 만화를 탄생시켰다.

 

 
전망대 풀밭에 누워 은하수를 온몸으로 맞이하고 있자니 그 별빛이 시간의 경계를 허물고 먼 유년 시절의 어느 여름 밤으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 시골 할머니 댁 마당 한가운데 놓여 있던 커다란 평상. 할머니 무릎 베게를 하고 누워 바라보던 어린 날의 여름 밤하늘도 딱 이와테의 이 하늘처럼 깊고 무한했다.

 
손주가 모기에 물릴까 봐 곁을 지키시던 할머니의 부채질. 리듬을 타며 귓가를 스치던 시원한 바람 소리. 마당 구석에서 왕겨와 쑥을 한 태우며 피어오르던 희뿌연 모깃불의 아련한 내음. 매캐하면서도 마음을 한없이 편안하게 해주던 그 향을 맡으며, 나는 할머니의 부채질에 북두칠성을 찾으며 북극성을 재다 잠이 들곤 했다.


아주 어린 시절도 아니었지만  열심히 재미나게 봤던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안드로메다로 향하던 철이가 여행의 끝에서 깨달은 것은, " 차가운 기계의 몸이 아니라 눈물 흘릴 줄 아는 유한한 인간의 따뜻한 마음" 이었다.

시즈쿠이시의 밤하늘 아래서 내가 마주한 것 역시 그런 따스함이었다. 이제는 세상에 계시지 않는 할머니의 사랑, 사라진 마당과 평상. 그래도 별들은 그 시절의 기억을 고스란히 머금은 채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다. <은하철도 999>의  어린 주인공들이 은하열차를 타고 찾으려 했던 진짜 행복도, 결국은 이처럼 곁에 있는 소중한 이들과 나누었던 순수한 사랑의 기억이 아니었을까.


 

나가며...기억은 별 위에

 
도시의 불빛이 사라진 캄캄한 고원에서 마주한 시즈쿠이시에서의 은하수 관측은 단순한 관광이나 골프여행의 부속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그 시간은 내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추억을 찾아 떠나는 내면으로의 여정이었다. 
15년간 골프 여행을 기획하면서 수많은 코스를 걸었다. 각각의 골프장에는 그들만의 역사와 철학이 있었다. 그것을 읽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와테의 밤하늘이 보여준 것은 그런 거창한 것들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가슴 깊은 곳에 묻혀 있던, 나만의 가장 소중하고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었다.  이미 지나간 줄 알았던 그 시간들, 할머니의 사랑도, 모깃불의 향도, 모두 여전히 내 안에 살아있었다.


밤하늘의 별빛은 시공간을 초월해 인간을 가장 순수했던 시절로 되돌려놓는다. 지구상의 그 어떤 골프장보다, 그 어떤 풍경보다, 이 밤 하늘은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로 돌려보낸다.  낮에는 자연의 기복을 온몸으로 느끼고 걸으며 코스를 만나고, 밤에는 로프웨이를 타고 우주로 올라가 내 안의 잃어버린 향수와 대면하는 곳. 시즈쿠이시는 참으로 묘한 마력을 지닌 땅이었다.  

 
이미 떠나신 할머니와 엄마 아버지를 그리며 콧 등이 시큰둥해 질 즈음, 캄캄한 밤하늘 위로 별똥별 하나가 긴 포물선을 그으며 떨어졌다. 시즈쿠이시의 밤하늘과 별똥별에 소원을 빌었다. 
핸드폰 화면은 잠시 꺼두어도 좋다. 사진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이 거대한 우주의 감동과 향수를 온전히 눈과 가슴에 새긴 채, 다시 지상으로 내려가는 은하열차(로프웨이)에 몸을 실었다. 내 안의 소중한 기억들이 저 별들 위에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확신하면서.


 

[시즈쿠이시골프] 골프여행 후기 1부 - 이와테산을 향해 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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