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경에서 고창으로 가는 먼 길
이틀간의 문경CC 힐링골프를 마치고 세 친구들은 서울로 떠났습니다. 서울과는 반대방향으로 30여분을 달려 점촌시 버스터미널에 내려주고 갔습니다. 호남골프팀과 조인을 하려고 점촌에서 대구행 버스를 타기로 했는데.... 아뿔사 ㅠ 지금이 코로나 비상시국이란 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20~30분에 한대씩 있다던 대구행 버스는 손님이 차면 출발하는 어느 가난한 동남아 국가의 교통시스템처럼 변해 있었습니다. 뉴스에서 수없이 봤던 인천공항의 주기장 모습, 하늘에 떠있어야 할 비행기가 줄지어 서있는 모습처럼 터미널을 가득 메운 버스들을 보고 놀랐습니다.
거의 3시간을 기다린 끝에 출발하는 버스에는 단 세명만이 탑승했습니다. 세명의 승객조차 지정석과 상관없이 띄엄띄엄 앉게 안내하는 기사를 보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장거리 노선에 세명의 승객으로 출발하는 저 기사는 어떤 생각으로 운전대를 잡을까? 혹 다음달 부터는 휴직을 걱정하며 운전하지는 않을까? 버스회사의 고민과 어렴움은 얼마나 클지 묻지 않아도 알듯해 마음이 아팠습니다.
비행기는 하늘에 떠 있어야 하고, 장거리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어야 하는데 멈춤은 곧 부동이고, 부동은 생명의 정지인데. 교통의 멈춤이 경제의 멈춤을 예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불안감......
달리는 차안에서 바라보는 차창 밖의 봄 풍경이 참 아름답습니다. 시계와 군경계를 지나며 연달아 이어지는 지자체들의 코로나 주의보와 행동강령 메시지에 차창 밖 풍광은 그저 만화경 처럼 여러가지 생각을 불러 일으키며 감흥없이 지나갑니다.
두 시간 채 걸리지 않아 대구에 도착했습니다. 내 고향 대구. 잠시 생각이 많아집니다. 고등학교까지 이곳에서 자랐고 주민번호에 이곳 출신임이 세계만방(?)에 알려져 3월초순 일본출장길이 막혔지만 손톱 만큼도 원망하지 않았던 내고향 대구. 친지들과 친구들에게도 연락없이 도킹차량에 올라 바로 고창으로 향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멀리서 와준 성의에 감사하며 따로 국밥과 막창요리로 저녁식사라도 대접하고 길을 나섰을텐데... 신천지란 괴물이 초토화 시킨 대구를 모두들 빨리 떠나고 싶어 하니 어쩔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고향을 외면하는 듯한 생각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광주에서 1박2일 골프 라운드를 마친 동반자들이 저를 픽업하기 위해 대구까지 왔습니다. 수백킬로를 달려온 후 차를 돌려서 왔던 길을 다시 달립니다. 전라북도고창으로 향하는 길. 오랜 교분이 있던 친구들이긴 하지만 성의가 고마울 따름입니다. 앞으로 함께할 3박4일에 대한 기대로 분위기는 다시 반전했습니다.
몸이 힘든 것도 잊어 버리고, 대구로 내려오는 길에 느꼈던 무거운 마음도 뒤로 하고 밝은 기분으로 고창으로 향하다 남원에 잠시 들렀습니다. 성 춘향의 땅에서 저녁식사를 하려고 왔는데 코로나 탓인지 맛집들은 모두 일찍 문을 닫았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성실하게 실천하는 도시인 듯 합니다. 인터넷의 도움으로 찾아간 집은 그 어떤 맛집 보다 맛이 있었고 친절했습니다. 반주로 곁들인 막걸리 맛이 일품입니다. 깊은 맛에 묵직하면서도 시원했습니다. 호남의 맛갈스런 음식을 처음 접하는 저녁이자 호남골프투어에 나선 여행객의 만족이 시작되는 접점이기도 했습니다 .
■ 심야의 등대, 고창 석정힐스 골프호텔
심야에 도착한 고창에서 숙소를 찾기는 쉬웠습니다. 언덕위에 등대처럼 불을 밝히고 있는 고창 석정힐스 골프호텔은 아담하고 아늑했습니다. 한국관광공사로부터 우수 숙박업소(굿스테이)로 선정된 골프텔답게 깨끗하고 편안했습니다. 네개의 침대가 나란히 놓인 방에서 바로 골아 떨어졌습니다. 코골이 대회를 방불케 하는 시간이었을 듯 합니다.
다음날은 예약 중복으로 오전은 석정힐스 18홀, 오후는 담양레이나CC (구 담양다이너스티) 18홀이 예정되어 있어서 이른 새벽에 눈을 떴습니다. 셋 모두 이틀간의 라운드와 먼길을 이동한 피로가 만만치 않지만 입가엔 미소가 돕니다. 오늘은 처음 가보는 골프장 두곳에서 36홀을 라운드할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요. 아침 잠이 없고 신앙심이 깊은 막내는 먼저 일어나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냈더니 볼멘 소리를 합니다. 형님들 코골이 합창에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났다고 ㅎㅎ
석정힐스 라운드는 이른 시간 티업이라 7시전에 골프장으로 이동해 그린피를 선납하고 아침식사를 하면서 두번을 놀랬습니다. 생각 이상으로 저렴한 비용(그린피 6만원)과 왠만한 서울의 맛집 해장국 보다 나은 클럽하우스 식당 해장국 맛에 놀랐습니다. 수도권 골프장 클럽하우스 식사가 비싸지만 맛은 평범한 것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겠지요.
광주의 C 대표는 건강문제로 오전 라운드에는 합류하지 못해 3인플레이로 라운드를 마쳤습니다. 고창에서 나고 자란 캐디의 구수한 호남 사투리가 정겹습니다. 서울에는 딱 한번 가 봤고, 해외는 아직 나가 보지 못했지만 고창이 너무 좋다는 이 순박한 아가씨 덕분에 18홀 라운드가 더 즐거웠습니다. 기계적인 코스설명이 아니라 사람 향기가 나는 정담어린 대화가 참 좋았습니다.
코스는 전반적으로 무난하고 마운틴코스와 레이크코스로 서로 다른 느낌의 코스가 좋았습니다. 부부나 가족간 혹은 핸디 차이가 나는 혼성 골퍼들이 즐기기엔 더 없이 좋을 듯 합니다. 전장이 조금 짧은 듯 하지만 난이도를 높이려고 마운틴코스는 포대 그린을 많이 만들었고, 레이크 코스는 약간의 억지 해저드도 만들어 둔 것이 눈에 걸립니다.
고창읍내 바로 옆에 있고 골프장 바로 곁에 대단위 아파트처럼 들어선 실버타운 있는 요지라서 그런지 넉넉한 부지를 확보하지 못한 탓에 홀간 간격이 좁습니다. 몇홀은 잘못 날아온 티샷 볼이 다른 홀의 골퍼들을 위협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옥의 티인 듯 합니다.
■ 만화가 허영만 화백이 감탄한 담양의 맛집
고창의 맛집도 적지 않지만 마지막 날로 예정된 선운사CC 라운드후로 미루고, 오후 티업이 예정된 담양으로 이동했습니다. 50여분을 달려 대나무와 죽세품의 고장에 왔습니다. 만화가 허영만 화백이 들렀다 6,000원으로 황제가 된 기분을 느끼고 갔다는 '부부식당' 눈물(?)이 날 만큼 맛있는 가정식 백반과 '죽향'이란 이름의 기막힌 막걸리 맛을 경험했습니다. 갖가지 나물에다 묵은지로 만든 김치찜과 코다리는 밥도둑이었고 푸짐한 머릿고기는 막걸리 한병 더를 외치게 만드는 주범이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이 멋진 맛의 향연을 좀 더 즐기고 싶었지만 오후 티업이 예정되어 있어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일어섰습니다. 골프장까지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 오전에 함께 하지 못한 광주의 C 대표가 먼저 도착해 우리를 반가이 맞아 주었습니다. 호스트인 C 대표는 지난 이틀간 무등산CC와 어둔산CC에서 두 후배들과 함께 라운드 했지만 저를 보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말이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 타지마할의 슬픈 사연, 담양 레이나CC
담양레이나 CC 참 아름답고 휼륭한 코스였습니다.
골프장 홈페이지( http://www.reinacc.co.kr) 에서 가져온 골프장 소개글입니다.
" 한폭의 그림 같은 모습...
추월산 자락 광활한 초지 위에 펼쳐지는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경관, 원초적인 수림과 계곡, 완만한 능선과 자연스런 계류 등 자연 그대로의 지형을 살려 Updown을 조형화 시키고 Undulation을 형상화시켜 트러블 요소를 극대화한 전략 코스 레이아웃을 자랑하며, 정확한 샷과 고난도퍼팅, 구체적인 전략 등 고도의 두뇌 플레이를 요구하는 도전적인 코스는 매 홀마다 서로 다른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 라운드할때 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 18홀의 세계적인 챔피언코스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 또다른 가치를 선사할 것입니다.
또한 아테네 신전을 옮겨 놓은 듯한 클럽하우스는 격조 높은 인테리어, 호텔 스위트룸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골프텔 등 고객 여러분의 사교와 비즈니스의 동반자가 될 것입니다 "
호흡이 제법 긴 문장이 조금 아쉽지만 골프장의 특징과 장점을 잘 설명하고 있는 듯 합니다.
아웃코스인 ‘임페리얼 코스’는 호수와 크랙이 많아 정확한 공략루트를 결정하고 정교한 스윙이 필요한 코스입니다 . 인코스인 ‘마제스티 코스’는 수풀이 우거진 계곡과 해저드를 가로 질러야 하는 홀이 많아 긴장을 늦출 수 없지만 재미난 코스이기도 합니다. 풍광도 무척 아름답습니다 .
함께한 동반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 골프장은 원래 '담양다이너스티 골프장'이었고, 소문에 의하면 모 건설회사의 회장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지은 코스였다고 합니다. 덕분에(?) 클럽하우스는 궁전을 방불케 할 만큼 호화롭게 지어졌고 골프장 곳곳에 자리한 수많은 조형물들이 골프장의 호사스러움을 더해 주고 있었습니다 .
유럽스타일의 클래식으로 품격을 더하고 고급 이태리 대리석이 풍기는 고풍스러운 인테리어가가 돋보이는 클럽 하우스는 동화속에서나 볼수있는듯한 모습으로 널리 알려져, 많은 드라마와 영화가 이곳을 배경으로 쵤영되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 아름다운 골프장이 인도 타지마할의 슬픈 사연과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아름다운 골프장을 짓고, 거액을 들여 클럽하우스를 장식했지만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못했나 봅니다. 인도 무굴제국의 한 왕이 사랑하는 왕비를 위해 건축했다는 아름다운 타지마할 사원. 아들과의 갈등으로 그 왕은 말년에 그곳에 유폐되는 운명을 맞습니다. 마주 보이는 왕궁의 아들을 원망하며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는 슬픈 전설이 오버랩 되기도 합니다 .
떡갈비와 돼지갈비가 담양의 대표적인 음식이라기에 골프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돼지 갈비집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우리가 호남에 온 목적을 밝히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호남 골프여행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호스트인 광주의 C대표 부인이 동석해 딱딱한 비지니스 이야기가 오가는 자리를 푸근하게 만들어 주어서 좋았습니다. 미스광주 출신의 미인이자 넉넉한 호남의 인심을 보내주어 음식 맛 보다 더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
남도골프여행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하이앤드 골프고객에게 자신있게 내놓을 수 있는 푸짐한 선물 보따리를 들고 다음 목적지인 전주를 향해 떠났습니다.
▶ 내나라 골프여행 (남도골프-영/호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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