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지난 5월 21일 부터 4박6일간 스리랑카 콜롬보, 캔디, 누와다엘리야, 함반토타 지역을 돌아보며 각 지역 대표 골프장에서 라운드하고 쓴 후기입니다. 이번 일정은 스리랑카항공의 지원으로 진행되었는데, 주간 비행이라 8시간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사진출처 : 스리랑카항공 홈페이지
여행기간 순간이동을 하듯 시공간을 넘나들다 온 느낌입니다. 열대의 무더위와 고산지대의 가을 같은 서늘한 두 계절을 오가고, 고색창연한 골프장에서 라운드하며 19세기와 21세기를 넘나든 경험하기 힘든 골프여행이었습니다. 쉽게 만나기 어려운 코스라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제법 긴 글이라 두번에 걸쳐 나누어 싣습니다.
■ 슬픈 열대
1. 영국은 1700년대부터 1948년까지 긴 시간 동안 스리랑카를 식민 지배했다.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한 후 수탈체제를 구축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 ‘슬픈 역사’가 남긴 역설적이게도 ‘ 자랑스러운 유산’이 두어가지 있다.
2. 첫 번째는 스리랑카가 세계 최대의 차 생산지가 된 사실이고, 두 번째는 영국 식민 지배자들과 농장주들이 휴식과 휴양을 위해 세운 골프장들이다. 1800년대 세워진 골프장들은 유구한 세월의 흔적과 함께 여전히 긴 그늘을 드리운다.
3. 로열 콜롬보 골프콜럽과 누와라 엘리야 골프장은 아시아는 물론 세계에서도 가장 오래된 골프 클럽 중 하나다. 오늘날까지도 과거 식민지 시대의 스코틀랜드 골프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며 전 세계 골퍼들을 스리랑카로 부르고 있다.
■ 누와라 엘리야 골프장
1. 1889년 영국인들이 건설한 1,890미터 고산지대 코스라 기온이 낮다. 아침 기온이 16도라 긴팔에 옷깃을 여민다. 전날 함바토타 샹그릴라는 32도였으니 두 계절을 오가는 느낌이다.
2. 골프 박물관에 온 듯 고색창연한 클럽 하우스가 인상적이다. 130년 전 코스 모습과 골퍼들을 만날 수 있다.
전동카터도 없고, 트롤리도 없다. 골프 백은 캐디들이 직접 메고 다닌다. 전통이란다. 슬픈 전통이다.
모두 남자 캐디지만 안쓰러운 마음에 신발과 비옷도 꺼내서 따로 보관했다. “ You are my Boss today “ 라며 만류하는 캐디의 자세가 오히려 더 마음을 짠하게 한다.
3. 코스를 대단히 효율적으로 구성했다. 코스는 생활도로를 건너고 현지인의 집 앞을 지나기도 하면서 마치 잘 설계한 소코반 게임의 공간활용을 보는 듯 최적화 되어 전개된다. 몇몇 홀은 페어웨이를 일부 공유한다. 한 홀의 페어웨이에 두 팀 -캐디까지 열 여섯명이 북적대기도 한다. 재미있고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4, 티박스에 서면 펜스 하나를 두고 느릿느릿 달리는 삼발이 차량과 길을 오가는 현지인들의 무심한 눈길과 마주친다. 몇 홀은 마을 안에 있음에도 골프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역사의 흐름 속에 남겨진 세계로 순간 이동하는 듯한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5. 고풍스러운 매력과 현대적인 장식이 어우러진 기묘한 조화는 이곳에 특별한 분위기를 더 한다. 이곳의 매력이다. 아릉드리 나무들이 골프장의 역사를 말해 주는 듯 하다. 잔디는 중지를 닮아 샷 하기가 좋다.
6. 이 곳이 베트남의 달랏을 많이 닮았다는 느낌도 든다. 달랏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 1,000미터 고지에 여름휴양 도시를 건설하고, ‘달랏 팰리스’라는 골프장을 세운 곳이다. 식민지 시절에 건설된 역사적 배경이나 여름 골프 여행지로 인기를 얻고 있는 점 등이 많이 닮았다.
■ 로얄 콜롬보 골프클럽
1. 수도 콜롬보 시내 한복판에 있다. 회원제 골프장으로 1879년에 세워진 역사적인 코스다. 스리랑카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코스라 도심 속에서 전통의 멋과 역사의 흔적을 볼 수 있어 좋았다.
2. 클럽하우스 중앙에는 '찰스' 영국 국왕의 사진이 걸려 있어 의아해 했는데, 영국왕실과 깊은 인연이 있는 모양이다. 1928년에 조지 5세로부터 영국왕실 인장을 받고 <Royal>이란 호칭을 이름에 덧 붙여 사용하고 있단다.
3. 전장은 6,560야드로 오늘날 기준으로는 길지 않다. 오래전 좁은 땅에 지어진 코스라 홀 간격이 넓지 않고, 배수가 잘 되지 않는 단점이 있다. 티업 직전까지 비가 내려서 그런지 벙커는 해저드가 되었고 페어웨이 곳곳이 질퍽댔다. 그래도 코스 안으로 기차가 지나다니고, 아름드리 거목들이 세월의 흔적을 웅변하고 있어 무척 인상적이고 기억에 많이 남는 코스였다.
4. 이 곳에서 싱글 스코어를 기록했다. 77타.
전장이 길지 않고 평지형 코스라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처음 라운드 하는 곳에서 이런 스코어를 얻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KPGA 프로 출신인 골프다이제스트 K기자와 대한항공 출신 H 전무이사. 이 두분의 동반자 덕분이었다. K기자는 TV중계 방송에서나 볼 만한 샷과 경기진행으로 감동을 주었고, 미꾸라지들에게 메기 역할을 톡톡히 했다. H전무는 신중하고 정성스러운 샷으로 흐트러짐 없이 라운드에 임하게 하는 동력을 주었다. 즐겁고 인상 깊은 라운드였다. 두 동반자에게 감사드린다.